충식

충식 蟲食



바닥에 제 새끼손가락만 한 곤충이 있어요. 지금도 조금씩 앞으로 기어가고 있는 저거, 이름이 뭔지 기억해 낼 수가 없어요. 다리는 여러 개고 생김새는 징그러워 보이네요. 날마다 폭염인 한여름이니 곤충이 들어오지 않도록 신경 썼는데 말이죠. 이즈미 씨가 저 벌레를 발견한다면 좋아하지만은 않을 것 같아요. 어쩌면 무서워할지도 모르고…… 그런 모습은 조금 보고 싶은데 죽이지 않고 그대로 둘까요. 대략적인 위치를 기억해 뒀다가 퇴근하는 이즈미 씨가 집에 들어오면 우연히 발견한 척할까 봐요. 운이 좋으면 이즈미 씨가 소리를 지르며 제 품에 안기는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잖아요. 곤충은 어쩐지 비실비실한 상태로 힘이 없어 보이니 멀리 가지 못할 거예요. 사람처럼 더위를 먹은 걸까요? 어쩌면 기생충 같은 것에 감염된 건 아닐까요. 기생충이라, 그건…… 조금…… 부러워요. 조금이 아니라 많이. 아아, 이즈미 씨와 온전한 하나가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지.

무슨 짓을 해도 떨어지지 않는 이즈미 씨의 일부가 된다면. 지금보다 더 밀착해 살아가며 그의 내장까지 파고들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라쿠하는 창밖에서 시끄럽게 우는 매미 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누구나 땀을 줄줄 흘릴 만한 더위였지만 이런 날에도 그의 몸은 서늘했다. 몇 달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라쿠하가 모처럼 이르게 퇴근해 아무도 없는 빈집에 먼저 돌아온 날이었다. 하지만 무언가 다른 것을 할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하야토가 없으면 그의 일상은 돌아가지 않았다. 꼭 시간이 멈춘 듯 집 지키는 개처럼 바닥에 앉아 멀뚱멀뚱 기다릴 뿐이었다. 그러니 지금의 생활 방식은 객관적으로도 비효율적이지 않은가. 아무리 생각해도 그와 하나가 되는 게 옳은 길이다…….

철컥, 그때 열쇠가 구멍에 꽂혀 돌아가는 소리가 났다. 라쿠하는 문이 열리는 것보다 빠르게 몸을 일으켰다. 근처에 놓여 있던 종이컵을 집어 들어 마지막으로 관찰하고 있었던 벌레 위에 덮었다. 하야토의 눈에 들어가지 않게 대강 구석에 밀어 두고는 급하게 현관으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하야토의 머리 위로 커다란 그림자가 드리웠다. 신발을 벗고 있던 하야토는 갑자기 생겨난 그늘을 눈치채고 고개를 들었다.

"헤에, 아저씨. 웬일로 일찍 집에 와 있네?"

경쾌한 목소리가 귀를 두드리듯 울렸다. 네, 어쩌다 보니…… 싫은 건 아니죠? 라쿠하가 슬쩍 눈치를 보며 묻자 하야토는 웃으며 답했다. 그럴 리 없잖아. 그 한마디가 라쿠하의 삶을 이어 나가게 했다. 그는 말로 표현하지 못할 충족감을 느끼며 하야토가 신발을 벗고 집 안에 들어오는 것을 바라보았다. 손을 씻기 위해 화장실에 가는 하야토의 뒤를 졸졸 따르며 하염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죽을 때까지 이 뒷모습을 바라봐도 괜찮을 것 같았다.

"오늘은…… 어떤 하루였나요? 힘들거나 특별한 일은 없었어요? 귀찮은 손님이 찾아왔다거나……."

스스로 이 침묵을 깨는 게 싫었지만 라쿠하는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이 시간이 좋다고 해서 하야토를 지루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고, 그와 대화를 나누는 일 또한 즐겁기 때문이었다. 하야토는 평소처럼 능글맞고 장난기 가득한 눈빛으로 먼저 말을 꺼낸 라쿠하를 바라보았다. 순간 가라앉은 듯 보이던 눈동자를 마주한 라쿠하의 표정이 긴장한 듯 겁에 질렸다. 하지만 곧 하야토는 느긋한 태도로 입을 벌리고 하품했다. 아무 일도 아니라는 것처럼 여유로운 분위기를 풍기며 정말 잊고 있었다는 것처럼 운을 뗐다. ……. 내심 안심하던 라쿠하의 귀에 무언가 들려왔다.

"그렇지. 그러고 보니 말해줄 게 생겼는데, 아저씨."

"네."

"나 애인 생겼어."

하야토에게 있는 힘껏 뺨을 얻어맞아도 이렇게 귀가 멍하진 않을 것 같았다. 천천히 그 문장의 의미를 파고들어 보았다. 그에게 애인이 생겼다고…… 애인이라는 건 서로를 완전히 독점하는 관계가 아니던가. 그렇다면 쓸모없어진 저는 버려지게 되는 걸까. 지금까지 상상하지 못했던 일은 아니었다. 오히려 매일 같이 떠올렸던 일에 가까웠다. 언제든 하야토가 저를 떠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잠든 그의 얼굴을 바라봤었지. 밤을 지새우고, 이제는 습관이 된 불안에 잠겨 꿈인지 현실인지 모를 상상에 빠졌었지. 아저씨? 그때 하야토가 입술을 달싹였다. 천연덕스럽게 울리는 목소리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동요하는 것처럼 보이면 이즈미 씨가 저를 더 싫어하게 되지는 않을까. 대체 어떤 표정을 짓고, 어떻게 숨을 쉬고, 어떻게 눈을 깜박여야 하는지도 알 수 없어서…….

"제, 제가…… 뭘 잘못했나요?"

라쿠하는 천천히 심호흡하며 물었다. 적어도 본인의 상상 속에서는 그렇게 침착한 목소리를 꺼냈다. 현실의 그는 금방이라도 발작을 일으킬 것처럼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지하철 같은 장소에서 이런 모습을 보였다면 사람 여럿이 도움을 자청하며 다가왔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이곳은 둘의 공간이었고, 하야토는 입매를 비스듬히 올린 채 그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모습으로 웃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니. 아저씨는 잘못한 거 없어."

"그, 그럼…… 대체 왜……."

"으음? 내가 애인을 만들었다는 게 싫은 거야?"

그렇게 되물은 하야토는 저벅저벅 거실에 놓인 소파로 걸어가 털썩 앉았다. 다리가 피곤하기도 했지만 라쿠하의 기분을 더 바닥으로 떨어트리려는 의도 또한 존재했다. 지금쯤 라쿠하는 고개를 돌려도 되는지, 그가 싫어져 더 이상 얼굴조차 보여주지 않는 건지 새로운 고민을 시작했을 테니까. 하야토는 속으로 킥킥 웃으며 이 상황을 제법 재미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자세를 웅크리며 무릎을 앉고 그대로 굳은 라쿠하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지금쯤 그가 느끼고 있을 혼란스러움과 뒤틀린 독점욕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 같았다.

애인 따위 만들었을 리가 있나. 이렇게 저를 잘 따르는 개 한 마리가 꼬리를 축 내리고 있는데. 이 정도로 제 기대를 충족시켜 줄지는 몰랐던 터라 조금은 기특했다. 슬슬 채찍 말고 당근을 줄까 고민하던 차, 하야토의 머리에 새로운 생각이 떠올랐다. 이 상황이 만드는 묘한 흥분감이 척추를 타고 오싹오싹 내려왔던 것이었다.

"하지만 아직 그 사람과 자 본 적은 없어. 그쪽도 아저씨만큼 괜찮을지 모르겠네."

"……."

"모르지? 아저씨가 지금 침대에서 나를 즐겁게 해 주면 생각이 또 바뀔지도."

소파에서 미끄러지듯 내려간 하야토는 다시 두 발로 바닥을 짚고 섰다. 가벼운 걸음으로 총총 걸어가 마르고 넓은 등을 뒤에서 꼭 껴안았다. 무덥고 습한 날씨였다. 이런 날 라쿠하를 안으면 약간의 과장을 보태 꼭 시체를 안는 것처럼 차가웠다. 그 서늘함이 더 말할 것도 없이 기꺼웠다. 하야토는 그의 품에 얼굴을 기대고 꾸물꾸물 입꼬리를 올렸다. 제가 보지 못하는 시선 너머 무너져 있을 라쿠하의 얼굴을 상상했다. 겁먹은 개 같은 그 표정을 참 좋아했다. ……침실로 갈까? 팔을 뻗어 라쿠하의 고간을 더듬으며 말했다. 대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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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에게 올라탄 채 먼저 입을 맞춘 건 하야토였다. 라쿠하가 받고 있는 건 키스였지만 꼭 목을 졸리는 사람처럼 얼굴이 붉었다. 식은땀에 젖은 목덜미까지 입술이 닿자 그의 하반신이 반응했다. 쪽, 소리에 라쿠하의 거근이 꺼떡이며 하야토의 허벅지를 찔렀다. 가벼운 접촉에 흐른 신음이 바스러지듯 흩어졌다. 심한 긴장 탓에 제대로 기능하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직도 제 입맞춤에 이토록 착실하게 반응하는 걸 보니 하야토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하야토는 흥미 어린 눈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한 손으로 성기를 쥐었다. 헉, 라쿠하가 낮은 신음을 흘리며 손에 잡히는 이불을 꽉 움켜쥐었다.

커튼을 친 침실 안에는 빛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라쿠하의 얼굴은 아무리 짙은 어둠 속에서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붉어진 채였다. 그런 그의 물건을 위아래로 쓸어내리면 따라오는 반응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다. 얼어붙을 것처럼 차가운 동시에 금방이라도 타오를 것처럼 흐린 눈빛이었다. 흐트러진 숨을 뱉어내던 라쿠하는 돌연 하야토의 팔을 잡고 제 하체를 건드리는 행위를 멈추었다. 그러더니 하야토를 넘어트리듯 눕히고 그 위에 자리를 잡았다. 라쿠하의 만족을 위해 시작된 섹스가 아니라는 사실에 문득 위기감을 느꼈는지도 몰랐다.

빠르게 오르내리는 라쿠하의 마른 가슴팍이 선명하게 시야에 들어왔다. 하야토가 그의 셔츠 단추를 하나하나 풀어내자 라쿠하의 목울대가 크게 울렁거렸다. 라쿠하는 손을 뻗어 하야토의 어깨와 가슴을 어루만졌다. 그러고는 경건하게까지 보이는 몸짓으로 그 위에 입술을 가져다 댔다. 상대를 숭배하는 듯한 느낌이 담긴 애무였다. 속으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드러나지 않아 그렇게 보이는 게 분명했다. 라쿠하는…… 하야토의 쇄골 부근에 이를 세우며 그대로 그를 씹어먹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야토에게 버림받는 것보다는 그게 분명히 나을 터였다.

귓바퀴, 목덜미, 그리고 어깨. 그곳에서 맴돌던 입맞춤은 점점 아래로 내려와 어느덧 복부 밑의 허벅지를 향했다. 소중하게 입을 맞추다가 살을 가볍게 깨물기도 하며 애무를 계속했다. 하야토의 입에서 흥분 섞인 달뜬 숨이 흘러나왔다. 라쿠하는 그 모습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빠짐없이 눈에 담았다. 이내 허벅지 사이에 거리낌 없이 얼굴을 묻었다. 허리를 튕기며 바르작대는 하야토의 만족도를 계산하듯 헤아렸다. 이즈미 씨가 관계의 끝까지 이런 기분을 유지한다면 버림받지 않는 걸까. 사실은 연기였다고, 하나도 좋지 않았다고 차갑게 말하고는 영영 이곳으로 돌아오지 않으면 어떡하지. ……. 아무리 생각해도 견딜 자신이 없었다. 어떻게든 마음을 돌려야 했다.

라쿠하는 혀를 사용해 선홍빛 귀두를 자극하다가 갈라진 틈을 핥아 올렸다. 입 안에 하야토의 성기를 집어넣고 정성스럽게 굴렸다. 시선을 올려 쾌락에 일그러지는 하야토의 얼굴을 눈에 담았다. 제 봉사로 그가 느낀다는 게 더없이 만족스러웠다. 본능적으로 올라오는 구역질을 참으며 목 끝까지 사용했다. 뚝뚝 떨어지는 쿠퍼액을 망설임 없이 전부 삼켰다. 침을 윤활유처럼 사용하며 계속해서 하야토의 반응을 살폈다. 그는 허리를 파들파들 떨며 뒤만큼이나 앞으로도 느끼고 있었다.

이내 하야토의 다리 사이에 자리를 잡은 그가 맞닿은 살결을 비볐다. 손가락으로 하야토의 여린 살 틈을 파고들어 충분히 풀어졌는지 확인했다. 라쿠하는 곧 땀과 체액으로 축축해진 하야토의 안에 제 것을 밀어 넣기 시작했다. 그래도 빠듯하게 벌어지는 구멍을 열어젖히며 헐떡거렸다. 온몸이 녹아내리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꽉 조여오는 내벽이 지나치게 좁고 뜨거웠다. 이렇게 좋으면 안 되는데…… 지금은 하야토를 만족시키는 것만 생각해야 했다. 제 의지와는 상관 없이 반응하는 감각이 원망스러웠다.

그대로 거세게 쳐올리고 짐승처럼 허리를 털고 싶은 걸 참았다. 입술을 짓이기며 하야토의 목덜미에 숨을 토해냈다. 느껴지는 희미한 땀 냄새가 라쿠하의 성기를 더 부풀게 했다. 마른 몸을 껴안고 느릿하게 허릿짓을 시작했다. 그러자 하야토는 라쿠하의 목덜미에 팔을 휘감고 꼭 껴안았다. 그 행동에 다시 한번 이성이 날아갈 것 같았다. 가까스로 정신을 붙잡고 천천히 몸을 꿈틀거렸다. 기둥을 거의 끝까지 빼냈다가 배 속을 가득 채우며 파고들었다. 가장 깊숙한 곳을 찌르며 하야토의 신음이 갈라지는 것을 확인했다. 미칠 것 같은 쾌감이 느껴졌지만 그 쾌감을 통제하려고 노력했다. 그 탓에 라쿠하는 지금 제 기분이 어떤지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상태였다.

황홀하면서도 비참했다. 하야토의 신음이 귀를 파고들 때마다 애써 잡고 있던 이성이 희미해져 갔다. 아프게 하면 안 되는데…… 아래에 깔린 그의 허리를 꽉 붙잡고 묵직하게 찍어 눌렀다. 어느새 흐르기 시작한 눈물 몇 방울이 하야토의 뺨과 입가에 툭, 떨어졌다. 정신 없이 박히면서도 일말의 여유가 남아 있었는지 하야토가 웃었다. 보란 듯 손으로 라쿠하의 눈물을 훔쳐 입에 가져갔다. 할짝, 선홍빛 혀가 튀어나왔다 들어가는 장면이 생생했다. 그걸 본 라쿠하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사람처럼 굳었다가 급하게 고개를 숙였다. 거친 몸짓으로 입술을 부딪치며 게걸스럽게 혀를 섞었다. 이대로 상대를 집어삼키고 싶다는 욕망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러면서도 아래에서는 흥분을 통제하지 못해 점점 더 빨라지는 허릿짓이 강렬했다. 아, 아저씨. 미간을 좁히며 하야토가 신음했다. 좋아하는 걸까. 몸을 바짝 밀착하고 격렬하게 몸을 움직였다. 이대로 빙하기가 찾아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이렇게 하나가 되어있는 이 순간 그런 기적이 일어난다면 좋겠다.

그때 라쿠하는 깨달았다. 하야토를 만족시켜야 했다. 어떻게 해서든 그를 만족시켜 저를 버리겠다는 마음을 돌려야 했다. 하지만 그 후, 만약 지금 밑에서 흔들리며 쾌락에 흐려진 눈을 깜박이는 하야토가 금세 이 기분을 잊는다면. 아파트 곳곳에 널린 짐을 차곡차곡 챙겨 역시 떠나야겠다고 말한다면…… 라쿠하는 버틸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자세를 바꾸었다. 하야토의 마른 다리를 잡아 올려 제 어깨 위로 걸치게 했다. 다리 근육이 당겨진 탓인지 조임이 달라졌다. 윽…… 억눌린 호흡을 내뱉으며 다시 허리를 움직였다.

다른 방법 또한 존재할지도 몰랐다. 가령 지금 라쿠하의 어깨 위 허공에서 달랑거리는 발목을 자르는 거라던가. 제 흔적이 눈에 보이는 것도 좋지만, 예쁜 발목이 영영 사라지는 게 너무 아깝다면 힘줄을 그어도 괜찮았다. 라쿠하는 상상했다. 영구적인 장애를 갖게 된 이즈미 씨가 절뚝이며 이 방에 남는 장면을 끊임없이 그렸다. 후우, 으…… 생활이 불편해진 하야토가 무엇을 할 때마다 저를 찾는 상상을 했다. 새벽에 부스스한 모습으로 깨어난 그는 라쿠하를 찾으며 어린아이 같은 부탁을 할지도 몰랐다. 화장실에 데려다 달라거나 물을 가져다 달라고 말하며 점차 생활 전반을 의지하게 될 터였다. 하야토의 안을 채우고 있는 성기가 더 단단해지는 것을 느꼈다.

만약 정말 그럴 수 있다면…… 멀쩡한 나머지 발목에는 족쇄를 채워 바깥에 나가지 못하게 해야지. 혹은 처음부터 두 발목을 모두 망가트리는 것도 괜찮은 방법일 것이다. 라쿠하는 열기에 흐려진 눈을 깜박였다. 머릿속에서 이어진 상상에 어느덧 사정감이 몰려왔다. 하야토가 먼저 절정을 느끼기 전까지는 갈 수 없었다. 그 기분을 억누르기 위해 자세를 바꿨다. 하야토의 팔 사이에 손을 넣어 그의 몸을 뒤로 돌리고 넘어트렸다. 침대에 납작하게 깔린 하야토의 몸 위로 체중을 실었다. 전에 하야토는 이렇게 짐승 같은 자세로 박히는 기분을 좋아한다고 한 적이 있었다.

잠시 거칠어졌던 허릿짓을 의식해 이번에는 결합부를 느릿하게 자극했다. 그러다 뿌리 끝까지 한 번에 밀어 넣으며 안을 무자비하게 자극했다. 체위를 바꾼 탓에 더 깊숙하게 배 속을 쪼개는 듯한 감각이 느껴졌다. 하야토가 신음과 함께 기침을 뱉었다. 지금 볼 수는 없지만, 어쩌면 자신의 아랫배가 라쿠하의 성기 모양으로 조금 튀어나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라쿠하는 그의 등 뒤에 엎드려 누워 박으며 하야토의 것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척추뼈에 입을 맞추고 애무하다가 곧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행동했다. 하야토의 목뒤에 손을 올리고 힘을 주기 시작한 것이다. 덜컥 라쿠하는 한 손으로 하야토의 목덜미를 잡고 체중을 실었다.

캑, 콜록. 아저…… 제 호칭을 입에 담는 하야토의 얼굴을 베개에 묻어 버렸다. 숨을 쉴 수 있는 구멍을 차단하고 목을 졸랐다. 밑에 깔린 하야토가 바둥거릴수록 성기에 가해지는 자극이 늘어났다. 큭……. 아랫입술을 짓이기며 그의 숨이 막혀가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사실은 지금 빙하기가 찾아오지 않아도 괜찮았다. 이즈미 씨가 저를 버리겠다고 말하는 것을 기다렸다가 발목을 망가트리지 않아도 괜찮았다.

지금 힘을 풀지 않는 것만으로 이 순간을 영영 박제할 수도 있었다. 끈적하게 달라붙어 오는 하야토의 내벽을 느끼며 라쿠하가 거친 숨을 내쉬었다. 눈물과 땀이 섞인 채 흘러내렸다. 지금 하야토의 몸에 있는 열기는 안타깝게도 금방 식어갈 테지만 괜찮았다. 제게 안긴 채로, 제 손길에 죽어가는 이즈미 씨라니……. 이보다 더한 자극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지도 몰랐다. 그들이 하나가 되어 있을 때 사후 경직이 시작된다면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 설령 그의 몸이 시체가 되어 악취를 풍기고 먼지처럼 부서진다 해도 끝까지 함께하고 싶었다…….

하야토의 눈동자가 뒤로 넘어갔다. 아, 아아…… 그가 더 이상의 자극을 참지 못하고 먼저 절정에 다다랐다. 목이 졸린 채 몸을 부르르 떨며 아찔한 쾌락을 느꼈다. 라쿠하 역시 몇 초 후에 경련하듯 몸을 떨었다. 뇌리에 새겨진 본능처럼 깊숙한 곳에 사정하며 무심코 손목에 실었던 힘을 풀었다. 콜록, 콜록. 하야토는 기침하며 급하게 공기를 들이마셨다. 그 소리에 정신을 차렸는지 라쿠하의 표정이 변했다. 제가 무슨 짓을 저지른 건지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안 돼……. 이제 이즈미 씨는 저를 떠나겠지. 멍청한 제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였는데. 지금이라도 칼을 가져와야 하는 걸까. 새파래진 안색으로 생각하던 그를 하야토가 깨우듯이 건드렸다.

"물 좀…… 가져다줘, 콜록. 아저씨. 콜록."

통증으로 조금 갈라졌을 뿐 여느 때와 같은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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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꺼떡이는 성기를 빼내자 주륵, 질퍽한 정액이 흘렀다. 그 모습을 본 라쿠하의 안색이 더욱 좋지 않아졌지만 곧 잠자코 물을 가지러 갔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용케 물을 따라낸 그가 침대에 몸을 기댄 하야토에게 컵을 내밀었다. 격한 관계에다 목을 졸린 여파로 수분이 부족했던 모양이었다. 하야토는 벌컥, 벌컥 물을 마시고 컵을 다시 돌려주었다. 라쿠하는 조금 남은 물로 겨우 입술을 축이고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에게는 죽음 같은 정적이 시작되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하야토의 목덜미에 남았던 붉은 손자국이 푸른 멍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라쿠하는 열기가 식고 다시 서늘해진 손을 올려 건조한 얼굴을 쓸어내렸다. 무엇으로도 변명할 수 없었다.

마음의 준비를…… 해야겠지. 저를 떠나겠다는 이즈미 씨를 붙잡아 둘 마음의 준비……. 하지만 역시 저를 버리겠다는 목소리를 직접 들으면 견디지 못할지도 모른다. 차라리 그 전에 먼저 선수를 쳐야 할까. 라쿠하는 짙게 가라앉은 시선으로 하야토를 빤히 바라보았다. 버림받는 것을 두려워하는 개처럼 라쿠하가 제 눈치를 살피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는지, 하야토는 먼저 입술을 떼 본론을 꺼내는 친절을 베풀었다.

"왜 그래, 아저씨? 역시 내 생각이 바뀌었는지 궁금해?"

라쿠하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손끝이 경련하는 걸 들키고 싶지 않아 등 뒤로 숨겼는데, 이제는 손바닥에 땀이 맺혔다. 아저씨가 화를 낼까 봐 조금 무섭기도 하네……. 하야토가 말꼬리를 흐리며 이어 말했다. 그 문장을 듣자마자 덜컥 심장이 내려앉았다. 역시 이 모든 게 꿈이 아닌 현실이었다. 저는 곧 버림받을 예정이구나. 역시 발목을 자르는 게 제일 나을까. 아니면 차라리 같이 죽을까. 그를 꼭 껴안고 창문으로 달려가 뛰어내리기라도 할까.

"실은 그거 거짓말이었거든."

그때 하늘에서 저를 구원할 밧줄이 내려왔다. 라쿠하는 처음 하야토에게 애인이 생겼다는 말을 들었을 때보다 귀를 의심했다. 제가 너무 바랐던 탓에 만들어 낸 환청이 아닌가 싶었던 것이다. 저, 정말…… 채 말을 잇지도 못하는 라쿠하에게 하야토는 느긋하게 대답했다. 응, 정말. 아직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한 머리보다 마음이 먼저 반응한 듯했다. 그렇지 않아도 내내 붉어졌던 눈가에서 또 굵은 눈물이 떨어졌다.

"안아도…… 되나요?"

"아까는 묻지 않고 목도 조르더니 왜?"

장난스럽게 받아치더니 하야토는 다정하게도 먼저 팔을 뻗어 주었다. 그제야 안심한 라쿠하의 얼굴이 한껏 붉어졌다. 긴장을 푼 그가 하야토의 품에 고개를 묻고 헐떡였다. 왜 그런 거짓말을 한 건지 추궁하거나 화를 내지도 않았다. 누군가 객관적인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었다면 매우 이상해 보일 만한 광경이었지만 적어도 그들은 행복해 보였다. 하야토는 강아지를 쓰다듬는 것처럼 라쿠하의 정수리를 쓱쓱 어루만졌다.

"많이 놀랐어? 이런 장난은 싫어?"

"이즈미 씨가 하고 싶다면…… 제 의견은 중요하지 않아요."

울음에 젖어 축축해진 목소리로도 라쿠하는 꿋꿋하게 대답했다. 이것 봐, 역시나 훌륭한 개잖아……. 선명하게 보이는 충성심에 하야토의 기분이 좋아졌다. 그의 발밑에 누군가 있다는 사실을 증명받는 건 왜 이렇게 좋은 건지. 이런 시간만이 유일하게 그가 타고난 공허를 약간이나마 메워 주었다. 조금만 더 공을 들여 길들인다면 아저씨는 아마 죽을 때까지 저를 따를 개가 될 터였다. 하야토는 그 사실에 확신을 가지며 귀엽게만 보이는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를 본 라쿠하의 표정이 살짝 밝아졌다. 옅게 따라 웃는 그의 몸이 순간 뒤로 넘어갔다.

……. 한순간 하야토에게 밀쳐져 침대에 눕혀진 라쿠하가 혼란스러운 눈을 했다. 물을 가지러 가기 위해 대강 셔츠를 걸쳤던 라쿠하와는 달리 하야토는 아직 옷을 걸치지 않은 채였다. 무슨 상황이 일어나는 건지 궁금해하는 것 같으면서도 절대 먼저 입을 열지는 않았다. 하야토는 킥킥 새어 나오려는 웃음을 꾹 누르고 그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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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 봐. 나는 이래서 아저씨가 좋아.

잘 훈련된 개처럼 기다리는 법을 알고 있잖아. 내가 그런 존재를 얼마나 필요해 왔는지……. 있지, 나는 꼭대기에서 태어났어. 정신을 차리자마자 모두 내 발밑에 있었다고. 그 사실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이 지루한 세상에서 느낄 수 있는 재미의 양은 한계치가 있어. 인내심이 없는 나는 그 양을 진작 다 채워버렸는지도 몰라. 그래서 텅 비어버린 삶을 억지로 살아가는 거지. 아저씨가 내 눈앞에 나타나지 않았다면 언제까지 그랬을지도 모르겠어. 아저씨는 이렇게 나를 즐겁게 해 주고, 내 속내를 온전히 받아들여 주고, 나만의 강아지가 되어 주는걸.

하야토는 라쿠하의 허벅지 위에 올라타 눈을 휘며 웃었다. 곧 고개를 틀어 라쿠하의 귓바퀴를 한 번 핥더니, 안에 혀를 살짝 집어넣어 간지럽히기도 했다. 아직도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건지 크게 뜬 라쿠하의 눈이 흔들렸다. 아직도 내가 뭘 원하고 있는지 모르겠어? 야릇하게 속삭이며 하야토는 그의 고간 위에 손을 올렸다.

"좋았어. 너무 좋았으니까 한 번 더 기절할 때까지 안아 줘……."

천천히 라쿠하의 바지 버클을 풀어 헤치며 성기를 꺼냈다. 장난을 치며 애태우듯 민감한 부분을 손끝으로 살짝살짝 건드려 보았다. 한 번 사정한 뒤 감각이 더 예민해진 듯했다. 라쿠하는 꼭 감전당한 사람처럼 움찔거리며 신음했다. 하야토는 그렇게 계속해서 제 강아지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것처럼 굴었다. 이래도 참을 수 있어? 이래도? 그렇게 질문하는 눈빛으로 구경하더니 헤에, 하고 감탄했다. 이로 물어뜯은 탓에 상처가 난 라쿠하의 입술을 어루만졌다. 제법 따가울 텐데도 하야토가 주는 것이라면 통증마저 얌전히 받아들였다. 아저씨 정말 착하네. 상을 줘야겠어. 하야토는 고조된 목소리로 속삭이듯 중얼거렸다.

침대에 무릎을 대고 뒤에 손을 가져다 댔다. 앞은 이미 세운 채로 움찔거리는 구멍을 찾았다. 아직 정액이 전부 빠져나오지 않아 질척했지만 아까보다는 확연히 좁아져 있었다. 안쪽이 간질거리는 감각에 하야토는 조금 급하게 입구를 문지르기 시작했다. 귀두 끝에 투명한 물이 맺혔다. 하야토는 보란 듯이 입매를 끌어올리며 뻑뻑한 구멍 안에 제 손가락을 넣었다. 한 마디 정도가 들어갔을 때쯤 하아, 버거운 듯한 숨을 뱉으며 조금 더 밀어 넣었다.

목덜미에 땀이 삐질삐질 맺히는 것과 동시에 뺨이 달아올랐다. 이따금 뒤로 넘어가는 눈동자 탓에 보이는 선명한 흰자가 라쿠하의 참을성을 자극했다. 하야토는 몸을 지탱하기 위해 한쪽 손을 침대에 받치고 있었다. 그 손끝이 파들파들 떨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시트를 와락 구겼다. 하야토는 입술을 깨물고 손가락을 하나 더 집어넣어 안쪽을 늘리기 시작했다. 라쿠하의 것이 불시에 들어와도 버겁지 않게 느껴질 정도로 공을 들였다.

그러면서 동시에 고개를 숙여 입을 맞췄다. 쪽, 쪽. 일부러 질척한 소리가 크게 울릴 정도로 깊숙이 혀를 얽었다. 하야토는 능숙하게 본인이 약한 곳을 찾아 찌르며 야한 목소리를 냈다. 아, 아저씨…… 그럴 때마다 라쿠하의 숨소리가 불규칙적으로 변했다. 침을 뚝뚝 흘리며 먹이를 기다리는 개처럼 꺼떡이는 성기를 세우고 인내했다.

이내 라쿠하의 발기한 물건을 잡아 제 허벅지 사이 틈새에 비비적댔다. 바들거리는 다리를 밑으로 내려 일부분을 넣는 데에 성공했다. 아……. 한숨 같은 신음이 울렸다. 아래가 빠듯하게 벌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하야토는 떨리는 다리에 힘을 주며 천천히 더 밑으로 내려갔다. 라쿠하는 한껏 붉어진 목으로 알 수 없는 말과 신음을 꾹꾹 짓씹으며 내뱉었다. 하야토가 제 위에 올라타 직접 움직이는 것은 또 다른 자극이었으므로.

하, 하하……. 하야토는 아랫배가 꿰뚫리는 듯한 버거운 쾌감에 웃듯이 신음했다. 간신히 뿌리까지 삼킨 허벅지 부근을 확인하듯 더듬었다. 아까 제 상상대로였다. 마른 복부 위로 라쿠하의 성기 모양이 도드라져 옅게 튀어나와 있었다. 맨눈으로 직접 두 사람이 연결된 장면을 확인하자 누구 할 것 없이 흥분했다. 낯선 형태로 변한 신체를 어루만지며 하야토는 숨을 들이켰다. 짧은 시간 동안 움직이지 않고 그를 온전히 감각하다가 말했다.

"아저씨의 아이를 가질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응? 아저씨도 그렇게 생각하는 거지? 중얼거리며 위에서 말을 타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된다면 더 단단히 묶어둘 수 있을 테고…… 속으로 생각하며 허릿짓에 속도를 가했다. 색다른 느낌의 자극에 라쿠하가 흐윽, 하는 소리를 내뱉었다. 강아지의 아이를 배는 것도 색다른 자극이 될 것 같았다. 하야토는 그대로 몸을 숙여 키스했다. 눈물로 젖은 라쿠하의 입술을 삼키고 사탕을 빨듯 부드럽게 안심시켰다. 걱정하지 마. 지금은 버리지 않을 거야.

"하아, 아까처럼 안에, 으응. 잔뜩 싸 줘. 임신, 하고 싶어."

하야토는 점점 힘을 빼며 다시 라쿠하에게 주도권을 넘겼다. 그걸 느낀 라쿠하는 아래에서부터 성기를 단번에 뿌리까지 밀어젖혔다. 눈꺼풀 뒤로 반쯤 넘어간 하야토의 눈동자에 힘이 풀렸다. 벌어진 입술 사이로 외마디 숨이 터져 나왔다. 내벽을 긁으며 빠져나갔던 기둥은 숨 돌릴 틈도 없이 다시 쾅 들어왔다. 라쿠하는 아까 하야토가 어루만지던 아랫배를 꾹 눌러 자극을 더했다. 찔걱이는 마찰음이 귓가를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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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교는 정말 하야토의 말대로 그가 기절할 때쯤이 되어서야 끝났다. 거의 동시에 두 사람이 묵직한 숨을 뱉으며 사정한 뒤, 하야토는 라쿠하의 몸 위에 쓰러지듯 엎어졌다. 온몸의 힘이 쭉 빠져나가는 기분에 하야토는 가물가물한 눈꺼풀을 감았다. 그러고는 아직 할 말이 남았다는 듯 간신히 의식을 부여잡았다. 라쿠하의 손을 꼭 잡고 중요한 것을 묻듯이 말했다.

"이렇게, 되었으니…… 끝까지 책임질 거지?"

그 말을 마지막으로 하야토는 깊은 잠에 빠졌다. 제 바람을 전부 이루었다는 듯 나른한 표정으로 취하는 평화로운 수면이었다. 혼자 남겨진 라쿠하는 잠시 생각하다가 널찍한 침대에 풀썩 누웠다. 그렇게 하야토의 곁에서 한참 동안 그가 자는 모습을 관찰했다. 그러다 감히, 무슨 용기가 불었는지 팔을 올려 하야토의 머리카락을 살살 만져 보기도 했다. 미처 커튼에 가려지지 않은 창문에서 노을 한 조각이 방으로 쏟아졌다. 그 노을 조각이 사라지고 창밖이 완전히 어두워질 때까지 라쿠하는 하야토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즈미 씨……."

그가 잠에서 깨지 않게 라쿠하는 속삭여 보았다. 이미 없어져 버린 노을처럼 그의 얼굴이 붉었다. 버리지 마세요. 정말 하나가 되게 해 주세요. 그러니까 아이를 갖겠다는 말은 너무했어요. 그 자리는 제 건데…….

이즈미 씨의 배 속에 들어가 영원히 함께하는 건 제가 더 먼저, 그리고 간절히 바라왔던 일이란 말이에요. 오늘 이즈미 씨가 제게 장난을 쳐주신 덕에 깨달았어요. 일반적으로 생각하지 못하는 길이라도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는 걸……. 앞으로도 저는 계속해서 생각할 거예요. 일상에서 지하철을 타고, 식사하고, 일을 하고, 이즈미 씨와 살을 맞댈 때마다 고민하겠어요. 더 가까이 닿고 싶어요. 하나가 되고 싶어요. 언젠가 정말 그렇게 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볼 테니까…… 영영 불안도 공포도 없는 세계에서 함께해요…….

라쿠하는 떨리는 손길로 하야토의 머리카락을 들어 올렸다. 옅은 색의 머리카락이 몇 가닥 잡혔다가 손바닥 안에서 모래처럼 흩어졌다. 라쿠하는 그 잔상이 영원히 남아있기라도 할 것처럼 아무것도 남지 않은 손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둘이 하나가 된다면 남은 하나는 이렇게 사라지는 거겠지. 상대에게 흡수당해 아무런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없어지겠지. 흥분이 척추를 타고 발끝까지 전율시켰다. 라쿠하는 곧 침대를 벗어나 저벅저벅 침실 밖으로 걸어갔다. 목적지는 부엌이었다.

라쿠하는 하야토가 집으로 돌아오기 전에 그랬던 것처럼 바닥에 몸을 웅크리고 앉았다. 시야에 몇 시간 전 미처 죽이지 못하고 종이컵에 가둬 두었던 곤충이 있었다. 아직 삶의 의지가 남았는지 종이컵 아래에서 발버둥을 치고 있는 것 같았다. 종이컵이 진동하듯 미세한 거리로 슥, 스윽 하고 움직이고 있던 것이다. 그것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아마 하야토가 눈을 뜨고 일어나기 전까지는 계속해서 그럴 터였다. 그렇게 라쿠하는 거대한 감옥에 갇힌 벌레에 대해 생각했다. 그 모습에서 누군가를 떠올리기도 했지만 곧 잊어버렸다.





fin